보고듣고느끼고2011. 2. 27. 15:06

4년 전, 글쓰기 수업 시간에 과제로 제출했던 말테의 수기 서평. 

국문학과 교수님의 칭찬과 함께 학급에서 가장 인상적인 서평이라는 평을 듣고 뿌듯했었다.   

아직도 내게 있어 말테의 수기의 이미지는 뿌연 안개같기만 하다.

문학적 수사법 중 '의식의 흐름'기법의 대표격으로 생각하는 작품.



릴케, 고독 속 방황하는

지식인의 형상에 자신을 비추다 



‘만남’은 사람을 만든다.

어머니의 자궁에서 밀려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새로운 세계를 만나고, 자라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책과 영화를 만나고, 환경을 만난다. 이렇듯 수많은 만남들 속에는 인간의 삶을 이루는 부속품들이 들어있어 그것들을 거치면서 독립된 개체로서의 하나의 인간이 빚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이 책 <말테의 수기>를 ‘만남’으로 인해 파리라는 도시를 ‘만나’ 방황하는 한명의 젊은이(주인공 말테)를 ‘만나’고, 그를 통해 책의 저자(라이너 마리아 릴케)까지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은 실로 흥미롭다. 이러한 종류의 일기체 소설을 많이 접해보지 않은 사람에게 이 작품은 다소 생소하고 혼란스러울 수 있다. 눈에 띄는 장면의 이동이나 사건내용 전개가 없고 거의 기억의 단편 단편을 나열하는 식의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라이너 마리아 릴케라는 한 사람의 인생을 되짚어 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작품이 어렵고 모호할수록 작가의 삶의 배경을 살펴 볼 필요가 있는데 이는 작품내용의 이해에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작품을 넘어서는 사유까지도 가능케 한다. 또한 작품을 읽기 전에 “말테는 나의 정신적 위기에서 태어난 인물이다.” 라는 릴케의 언급을 통해 작품속의 주인공인 ‘말테 라우리츠 브리게’가 작가 릴케의 자화상과 다름 없음을 염두에 둔다면 작품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딸을 갖고싶어했던 어머니에 의해 딸처럼 길러진 작가의 유년시절 기억은 시인으로서 그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그 뒤 육사 입학이라는 환경의 급 변화로 인해 그는 적응하기위한 몸부림과 함께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받게 되고 이는 훗날 그의 작품에서 시련과 고통의 시기로 종종 묘사되곤 한다. 그의 삶을 통틀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을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한다면 ‘러시아 여행’과 ‘로댕과의 만남’ 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두 차례에 걸친 러시아 여행을 통해 평야와 황야의 무한성을 느끼고 황야위에 펼쳐진 하늘과 자연의 정적을 바라 볼 때의 감정을 예술적 욕구로 승화시켰다. 로댕과의 만남은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깊은 환멸을 느꼈던 파리에서 이루어졌는데 그는 로댕에게서 사물을 보는 눈과 예술적 감각을 배웠다. 그리고 비록 이 거장과 어색한 결별을 하긴 하였으나 그에 대해서 릴케가 품고 있던 경의와 애정은 온 생애를 통하여 변함이 없었고 그에게서 받은 지대한 영향은 ‘말테의 수기’ 뿐 만 아니라 그의 ‘사물시’들 가운데 확실하게 드러난다. <사물시 Dinggedichte>에서 릴케는 개개의 현상에 대한 겸허하고도 참을성 있는 태도로서 자기의 눈앞에 존재하는, 살아있거나 혹은 생명이 없는 대상의 본질을 표현하고 있다. 그의 시는 현대의 어느 독일 시인의 시에서도 볼 수 없는 적확하고 직감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 것이 특징이므로 이 소설을 접한 사람이라면 그의 사물시를 구하는 수고를 감수하고 읽어봄도 유익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파생된 세계에서 살고 있다.

먹는 것, 입는 것 등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것들부터 시작하여 듣는 것, 보는 것 등 우리가 느끼고 향유하는 것들까지 우리의 주변은 본질로부터 파생되어 나온 개념들로 가득하다. 서점에 가면 파생된 세상에 대한 적응 기술을 적은 책들이 즐비하고 하나같이 베스트셀러 목록을 꿰차고 있는데 이는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다. 넘쳐나는 파생의 세상에서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러한 개념들을 빠르게 익히고 적응해 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때에 무언가의 ‘본질’에 대해 묻는 것은 고리타분하고 시대의 조류를 따라가지 못하여 도태되는 행위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오늘날 세상은 ‘인간의 더 나은, 더 풍족한 삶’ 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만 ‘삶’ 자체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더 거창하게 죽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만 ‘죽음’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본질 없는 파생이 존재할 리 만무하다. 이 책에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똑같은 핵의 주의를 다시 말하면 빈곤과 죽음과 공포의 주위를 끊임없이 돌고 있는 인간상이 드러나 있는데, 어찌 보면 지루하고 두서없는 듯 보이는 이 작품이 가치를 지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람들이 바쁘다는 핑계로 개념의 파생된 표면만을 맴돌고 있을 때 그 핵심을 파고들어 본질에 대해 질문하는 것, 이것이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그나마 ‘사색할 여유가 있는’ 작가들이 해야 할 사명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릴케의 이러한 노력의 결과인 <말테의 수기>는 사물과 죽음, 사랑에 대한 예리한 관찰을 통해 삶의 본질에 대한 인식 문제와 인간 존재의 문제에 심오하게 근접하고 있다는 면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유효한 가치를 지닌다고 하겠다. 다만 워낙 자전적인 형태와 의식의 흐름대로 쓴 작품이다 보니 문학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는 ‘독자와의 소통’ 면에서는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고, 읽고 이해하기에 상당한 사색과 혼자만의 생각을 필요로 한다는 고충 아닌 고충이 있다.


어떠한 세상에 대해 환멸을 느낀다는 것은 그 전에 세상에 대해 기대하는 바가 있었다는 것이고 이는 시인으로서 순수한 마음을 지니고 있으며 정의심과 책임감을 지니고 있었음을 방증한다. 질보다는 양이 중시되고 죽음이나 사랑, 인생의 본질적 의미는 뒤로한 채 무의미한 것, 만연해 있는 타락과 암흑을 경험하고 ‘파리’라는 대도시의 침체에 아연한 릴케의 심정을 우리는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문학적인 자아를 찾으려는 한 문학 소년의 몸부림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다.



장미꽃이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이리도 많은

눈꺼풀 아래 그 누구의 잠도 아닌 기꺼움이여.



그 누구의 죽음도 아닌 자기 자신의 죽음을 바랐던 릴케에게, 가장 자기다운 죽음이 성취되는 날이 왔다. 장미꽃 가시에 찔린 것이 덧나서 백혈병을 일으켰고 이것이 죽음의 직접적인 죽음의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평생을 방랑과 고독으로 지냈고 지금은 자신이 미리 지어놓은 시가 적힌 묘비 밑에 잠들어 있는 그를 우리는 아직도 책장 사이에서 살아있는 활자로 만날 수 있다. 다만 릴케가 아닌 말테의 이름으로.

Posted by Songswann